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토목의 변 (문단 편집) == 원인 == 명나라와 [[몽골]] 계통 [[오이라트]]족 사이의 무역분쟁이 원인이었다. 1406년 [[영락제]]가 몽골 부족과의 조공무역을 승인한 이후, 명나라에서는 비단과 의류, 식량을 수출하고, 몽골 부족들은 말과 모피 등을 수출하는 마시(馬市)가 관례화되었다.[* 사실 몽골 뿐만 아니라 다른 유목민들도 중국과 교역할 때 이렇게 했다.] 그런데 초기에는 기껏해야 수십 명 단위의 소규모 교역에 불과했던 마시의 규모가 점점 커져 수천 명 단위가 되어버리고, 여기에 [[위구르]] 상인까지 가세하면서 무역의 규모가 지나치게 커져버렸다. 게다가 오이라트 쪽에서는 실제 말 숫자보다 명목상의 말 숫자를 늘리는 형식으로 말 값을 몇 배로 올려받았고[* 당연히 좋은 말 안주고 나쁜 말을 많이 주어서 말 값을 비싸게 받았다. 이렇게 말을 강매하면서, 값을 높게 받고, 질이 떨어지는 말만 넘기는 수법은 [[위구르 제국]] 시절부터 이어져내려온 유목민의 중화제국 삥뜯기 방법이다.], 한 몫 잡으려는 사람들이 가세하여 밀무역이 벌어지는 등[* 사실 한족과 북방 유목민 간의 밀무역은 이전부터 성행하고 있었다.] 이래저래 영종 [[정통제]] 시절에는 명나라의 골칫거리로 자리매김하였다. 그래서 명나라에서는 무역을 제한하기 시작하였고, 환관 [[왕진(명나라)|왕진]]이 나서서 조공무역 이외의 무역은 금지하고, 오이라트에도 실제 숫자에 해당되는 말 값만을 지불함으로써 말 값을 정상화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